찬양대, 이대로 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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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 이대로 둘 것인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대도 변하고 봉사자 수도 줄고 있는데, 이젠 없애도 되지 않을까’라고 오해를 살 수 있는 질문인 것 같다. 워낙 충성스럽고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집중되다보니 좋은 리더들을 분산하거나 효율성 있는 위치에 재배치하려는 의견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방치하지 말라는 말이다. 난 사실 할 수만 있다면, 찬양대를 더 황성화시키고 더욱 의미 있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왜?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무 것도 모르면서, 어른 찬양대에서 함께 연습을 하려고 고집 부리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중고등부 때 내 생애의 첫 번째 교회 봉사의 기회를 찬양대원이 되어 섬길 수 있어서만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찬양대 지휘자로 리더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경험할 기회를 주어서만도 아니다. 목회자가 된 후에,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자신의 삶과 시간을 쪼개어 고생(?)하는 찬양대원들을 봐왔기 때문에는 더더욱 아니다.

찬양대는 인류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놀라운 역사의 현장 속에, 그것도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과 같이 임하여 누구도 서서 섬기지 못하였던 솔로몬 성전의 놀라운 역사 속에서도(대하 5장), 이길 수 없는 전쟁 중에 승리케 하시는 기적 속에서도(대하 20장),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하는 이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내 첫 지휘자 시절 노래 한 곡으로 회중 안에 강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사건 역시, 난 증거할 수 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레위 족장들을 리더로 삼고 그 자손들 중에 찬양대로 섬길 자들을 세우게 된다. 이들은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 하는 법궤 앞에서 찬양하는 일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천 명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원(대상 23:3-6)되었고 이들을 이십사 반열로 조직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 중에 이백팔십팔 명은 고난도의 훈련을 받으며 특별하게 관리되기도 했다. “그들과 모든 형제 곧 여호와 찬송하기를 배워 익숙한 자의 수효가 이백팔십팔 명이라”(대상 25:1-7)

찬양대는 오래 전부터 쓰임 받았던 전통적인 예배팀이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예배팀인 찬양팀의 효용성과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사실 이만한 재능과 은사를 지녔고 헌신되고. 어찌보면 과분한 성도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모습으로 이미 모여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주일에 부를 특송 한 곡을 위해 많은 시간을 낼 정도로 멋진 이들이다. 예배사역의 파트너로 찬양대를 동참시키는 일이 최선일 수 있다. 소수의 찬양팀의 보컬로 끝내지 말고, 회중 찬양에 있어서도 찬양대의 적극적인 활용을 생각할 때이다. 찬양대는 한 예배에서 보통 5분 정도를 섬기고 있지만 30-40분을 사역하게 만들 수 있다.

찬양대를 정상화할 수 있으며 이들을 어떻게 목적에 부합한 사역에 참여하고, 행복하고 기쁘게 사역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공동체 예배를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 동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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