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준비를 위한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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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준비를 위한 아이디어
이런 상상을 해보자. 만약 정부가 당신에게 ‘30여 개국의 정상을 초청한 국제 모임에서 입국에서 출국까지 행사 전반에 대해 준비하는 책임을 맡긴다면’ 라고 말이다. 입국장 준비에서부터 정상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모르긴 해도 한동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른 채 멍해 있거나, 아니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만 있을 순 없을 테고... 출국할 때까지 일정에 대해 요일별, 시간별로 자세한 일정표를 만들게 될 것이고, 이전에 국제 행사에 관여했던 담당자나 문서 자료를 찾아보려고 할 것이다. 당연히 행사진행의 단계별 준비에 입국(공항), 숙박, 리셉션 및 만찬, 정상회의, 특별만찬 둥이 포함될 것이고 선물 및 기념품 항목도 고려될 것이다.

그런가하면 행사지원을 위한 기반구축에 필요한 차량, 나라별 의전, 행사지원인력 및 자원봉사자 등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방안을 위해 자료를 조사, 구성하고 인력을 배치하고, 행사 당일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모든 준비 과정이 착오 없이 진행되도록 매뉴얼을 마련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여기서 정상회의 행사준비현황이나 준비위원회의 역할 모두를 다룰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집고 넘어갔으면 한다. 어쩌면 우리는 매주 30개국 정상들보다 더 긴장해야 할, 우주의 정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하는 시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의 예배 준비라는 것이 왠지 보잘것 없이 보인다. 준비과정이라고 이야기할 내용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냥 몇몇 사람들이 역할을 맡은 대로 준비하면 된다. 몇가지 분야는 익숙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마음의 긴장을 가지고 준비하는 이는 (1-2년 만에 기회가 주어졌을지 모르는) 평신도 대표 기도자 한 사람처럼 보이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현실적으로 정상회담과 우리의 주일예배모임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단순 비교에 무리가 따른다는 것은 안다. ‘하나님이 왕 중의 왕으로 더 높으시다’ 고 이론상 말하는 것이지, 어디 실재 그렇게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나... 하나님이 아니라 국회의원 한 명을 만나려할 때, 우리의 자세가 더 긴장되는 것이 사실 아닌가! (주여~)

그런데 지금보다 조금 더 예배 준비에 힘을 쓰면 어떨까 싶다. 매년 더 말이다. 예배를 하나님과의 만남과 사귐이라고 말하고 그분의 인격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예배 준비의 자세가 이전보다 한층 더 깊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지도자 혼자 준비하는 자리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함께 마음을 쓰고 준비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과의 감동적인 만남을 통한 영광스러운 예배모임을 위해, 다음과 같이 준비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예배 봉사자로 어떤 교우들이 참여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교인 중 몇 명이나 예배를 위한 봉사자로 있는지를 알고 있는 교회지도자는 얼마나 될까? 교회 내 사역이라도 담임목사가 주도하지 않는 경우,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략 누가 어떤 분야의 예배사역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긴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예배의 어떤 역할로, 또 몇 명이나 세워져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회중 찬양팀이나 찬양대는 몇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들의 파트는 무엇인지, 또 반주자는 몇 명인지, 예배 안내, 주차장 봉사 또는 음향, 영상 등 방송실에는 어떤 교우들이 함께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할까? 나는 예배 봉사자에 대한 규모나 역할에 대한 인포메이션을 갖는 것을 예배 준비에 있어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봉사자들을 파악하는 것을 통해서 우선 봉사자 개개인에 대한 관심이 갖게 된다. 이것은 중요하다. 예배 봉사를 위해 구별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성도라면 모두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이 사실이지만, 예배 사역자들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마치 목회자가 한 명의 성도이지만 교회의 역할 상 중요한 것과 같은 것처럼 말이다. 순기능적인 역할은 예배 봉사자 모두에게 기대해야 할 사항이다.

둘째, 예배 봉사자가 기쁨으로 섬기고 있는지 확인하자.

누군가 기쁨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그 일을 함으로 주어지는 보상과 그것으로 인해 누리게 될 효과 때문일 수 있다. 마치 회사원이 원하는 정도의 월급을 받고 또 그 월급으로 가족들의 필요가 채워지는 것을 볼 때 갖게 되는 기쁨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자신에게 주어지는 재정적 보상보다는 그 일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어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기꺼이 감당하려 할 때 주어지는 기쁨이다. 마치 바쁜 중에도 주중에 두세 번 모여 준비를 하지만, 그렇게 쓰임을 받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감정과 같다.

사실 성경은 대가나 두려움이 근거가 된 행실을 죽은 행실로 경계한다. 다른 말로 중심이 실리지 않는 봉사를 조심하라고 가르친다는 말이다. 봉사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일의 대가도 위험하다. 죽은 행실의 경우 기쁨과 자원함이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기쁨을 갖기 못하는 다른 이유도 있다. 사역별로 봉사자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은사가 없이 무리하게 봉사하는 이들로 인해서도 부담을 갖게 된다. 리더의 역할이 무너지면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다. 사명과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적절한 권면과 격려가 따르지 않아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셋째, 영적인 예배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자.

예배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님에 대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교제가 예배다. 따라서 영적, 인지적, 정서적,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감동과 변화가 주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예배는 경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 경험을 통해 회중은 삶의 형태와 신앙 스타일을 형성해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배를 너무 신비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문제를 발생시킬 위험이 있다. 많은 경우 깊은 정서적 만족감, 황홀경, 감동 등으로 예배의 유무를 규정지으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측면이라는 것이 인지적, 정서적, 의지적인 면과 완전히 구분되거나, 또는 일부를 배제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오리려 성경의 지식이 개인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지는 깨달음의 인지적 차원도 영적인 예배라 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픈 결단이 일어나는 의지적인 차원도 하나님을 만난 영적 예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찬양을 하는 중에, 기도를 하는 중에, 말씀을 듣는 중에 경험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어떤 순서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지 우리는 알지 못하기에, 마련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 일을 위해 수종들 봉사자의 훈련도 고려하기 바란다.

넷째, 창조적인 예배를 위해 예배기획팀을 구성하자.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예배를 기획한다는 말이 언뜻 불경스런 표현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예배가 무의식적일지라도 기획되어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예배를 기획하는 그룹이 있고 이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설교만 보더라도 회중인 성도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고, 이를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어떤 감동과 변화에 대한 기대에서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 예배에 대한 기본적인 형식이 보편화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형식이 일정의 목적에 의해 변화되고 변형될 수 있다. 이미 예배는 기획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예배 기획이 순수한 신앙과 동기가 되지 않았을 때이다. 특정인 또는 소수가 어떤 의도와 방향에서 회중을 설득하려 할 때 예배는 수정의 여지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무한정 넓힐 수는 없지만, 적당한 인원으로 구성된 예배기획팀은 예배 뿐 아니라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전에 없었던 모임을 구성하여 운영한다는 것이 조금 귀찮은 일일 수 있다. 또 경험이 없는 것이라 생산적인 자리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또한 가능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다. 예배가 인지적, 정서적, 의지적 측면에서 인간 설득의 과정인 것처럼 기획팀 구성원을 설득하는 노력 역시 필요한 것이다.

다섯째, 예배 사역과 준비를 위한 매뉴얼을 준비하자.

교회 내에도 소모적인 논쟁이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어 교우들을 안내하면서 손은 어떻게 들어 표현할 것인지(예배안내팀), 예배를 어떤 멘트로 시작할 것인지(찬양팀), 포도주와 포도주스는 몇 대 몇으로 섞을 것인지(성례팀), 예배당 실내 온도는 몇 도로 할 것인지(설비팀), 성경 구절을 위한 영상 자막 사이즈는 몇으로 할 것인지(방송팀), 찬양대의 입장은 몇 시에 할 것인지(찬양대) 등 말이다. 본질적인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시비를 걸면 항상 근거가 희박하여 논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로인해 봉사자들이 피곤해지고 기쁨을 잃어버리게 된다.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근거를 마련하려는 노력도 별로 없다. 몇 번이고 바뀌었는데, 이유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5년 전 10년 전에 같은 질문이 있었던 내용일 수 있고 또 이미 이전에 그렇게 했었던 것인데, 기록에 남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이 심심치 않게 있다는 것이다. 담당하게 되는 목회자마다 기준이 다르고 오랜 봉사 경력을 가진 장로라도 바뀌게 되면 큰 혼란에 빠진다는 말이다. 교단이나 교회가 마련한 기준을 근거하여 만들고, 그 때마다 교회가 추인하는 정식 회의를 통해 수정되는 내용을 이유와 함께 기록해 두며, 매년 체계화되고 성장해 가는 사역들을 보게 될 것이다.

여섯째, 영적인 준비만큼 쾌적한 환경을 갖추도록 하자.

3주째 예배당 천장 전등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예배모임에 계속해서 나갈 마음이 있다면, 아주 신앙심이 투철하거나 아주 게으른 사람일 것이다. 침침한 형광등 조명 아래서 예배드리기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예배당 벽면에 일 년 내내 붙어 있는 현수막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무슨 전당대회도 아닌데, 구호는 그리도 많은지... 오히려 광고하는 내용은 참여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배당의 절반도 채워지지 않는데, 의자의 앞 뒤 간격이 너무 좁아 불편함을 느끼는데도, 굳이 장의자를 15줄 넣을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예배모임 준비 중에 환경을 준비하는 일은 우리 시대에 중요한 일이 되었다는 말이다. 얼굴이 화사하게 보이는 조명을 원하고,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성도들도 다르지 않다.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하고 쾌적한 예배당에 들어서면 마음이 열리고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음반을 틀어놓은 것 같지는 않더라도 균형감이 있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예배모임에 참석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다. 무대, 음향, 조명, 온도, 좌석, 청소 및 정리 상태, 실내 분위기 등이 영적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영적인 준비만큼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보자.

일곱째, 예배 평가모임을 갖고 보다 잘 준비한 예배모임을 준비하자.

기획모임도 부담스러운데, 평가모임까지? 그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할 수도 있으니 너무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평가모임이 주는 유익함이 있다. 그것도 많다. 선교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2개월간 방글라데시 치타공이라는 도시에 머물면서 선교에 참여한 적이 있다. 거의 매일 일정이 있었고 상당히 도전적인 여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 번은 도시에서 몇 시간을 차로 이동하고 산과 강을 수회 넘고 건너 도착한 한 종족마을에서 복음을 전했고 한 마을이 개종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이 기간에 팀이 매일 했던 것은 아침에 예배와 말씀 묵상, 저녁에 보고와 기도회였는데, 매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나누면서 얼마나 큰 감동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같은 것을 경험하면서 이토록 받은 은혜가 다르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하루를 마감하면서 그 날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나눌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 자신이 팀의 일원으로 함께 하는 것에 커다란 기쁨과 자부심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참여한 이들 뿐 아니라 리더의 입장에서도 그것은 커다란 격려와 용기를 갖게 하는 모임이 되었다. 예배 평가모임, 문제를 지적하는 일보다 은혜를 나누는 것이 훨씬 많을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더 나은 더 성숙한 예배를 기대한다면, 리더의 자리에 더 많은 이들을 초청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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