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좀 더 창의적인 예배모임이 되게 할 수 있을까?

AV사역

어떻게 좀 더 창의적인 예배모임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획일화 될 수 있는 우리의 예배를, 좀 더 창의적인 예배모임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창의력과 논리력 사고를 요구하는 세대다. 수학 교과서마저 스토리텔링 수학으로 바뀌는 시대란 말이다. 아참! 초등생 '산수'가 없어진 것을 아는지… 모두 '수학'으로 바뀌었다. ^^ 아무튼 요즘 초등생의 수학 교과서를 보면 많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초등생 1학년 교과서를 예를 들면, 고작해야 한두 자리 수 연산 문제이겠거니 예상하고 교과서를 폈다간 진땀께나 흘리게 될 것이다. 왜? 수학 교과서에 동화가 나오고 게임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연습문제를 풀게 할 것인지 막막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언급된 부분이지만, 왜 이런 식으로 바뀌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그것은 일단의 주입식 교육이 가져오는 한계를 극복하자는데 있다. 머리가 똑똑한 한국 아이들이 세계무대에서 주눅이 든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아이들이 직접 조작해보고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개념을 먼저 설명하기보다 실생활의 예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공부시키겠다는 일종의 장치다.

10년, 20년 후를 내다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수학에서 독해력이 중요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정답을 찾아내는데 급급했던 기성세대와는 달리, 문제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파악하며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수학적 의사소통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0년, 20년을 더 살았을 때, 우리는 오늘과는 전혀 다른 종족을 보게 될 텐데, 바로 지금 초등학교를 다니거나 들어가려는 아이들이 그들이다.

예배는 창의적이어야 하는가?

두 가지 이유로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그것이 새로운 세대가 소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미래에 그렇게 하면 되고 지금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이미 부모들은 자기 자녀가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칭찬으로 듣고 기분 좋아한다. 창의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기본의 틀에 갇히는 것을 매우 부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나만의 것을 만들어 갈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은 창의적 소통의 기본이 된다.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입은 왜 하나일까?" 아이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변한다. "입이 두개이면 밥을 먹을 때에 손이 너무 바쁘잖아" 이것은 요즘 보통 아이들의 표현이다. 지금은 창의적이란 표현을 써도 10년, 20년 후엔 아무도 그 말을 사용하지 않을지 모른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통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상식적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시기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더디 오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지금부터 새로운 소통의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 아니면 소통을 아는 일부 교회에 맡겨야 할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이유는 창의적인 예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배하는 이유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 입장을 보게 된다. 하나는 오직 하나님을 높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기뻐하는 것이 예배의 유일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상황이나 취향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는 사람을 위한다는 입장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드리는 기도와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교회 전체가 예배를 안 드려도 하나님은 늘 영광이 충만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란 입장이다.

이 두 가지 입장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난 예배를 한 번 더 생각한다는 입장에서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전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결과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고, 후자는 현실적인 필요로 하나님을 수단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성 있게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서로들 자신들은 그럴 의도가 없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이든 세상이든 예배는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예배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의 접촉이 있을 때다. 설교자와 회중의 접촉점이 있을 때다. 찬양과 기도가 우리의 삶을 반영할 때다. 그렇다면 이미 우리시대 대학생들의 기초 역량이자 사회생활에서도 필수적인 능력으로 인시하고 이의 습득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창의적 소통에 대해 눈을 감아서 될까 싶다.

창의적 예배는 창의적 사고와 삶에서 나온다.

그러면 우리도 창의적인 예배를 시도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조금만 눈을 뜨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져 보면 된다.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째는 사물을 반대로 생각하거나 법칙이나 규칙에 도전하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 보는 것이다. ‘물구나무서기에 도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에 도전하는 노력은 자주 혁명을 일으켜 왔다. 누군가 ‘예배 시간에 반드시 종을 쳐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했기에, 오늘날 찬양대의 입례송이나 예배인도자의 예배초청 멘트로 예배가 시작되는 일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를 용납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인생 속에서 어떤 일이든 한 번에 완성되는 일은 거의 없다. 여러 번 도전했고 또 실패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실패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반드시 옳아서도 아니다. ‘이것은 안 되겠는데...’라는 기준을 갖게 될 수 있다. 주일 낮 예배모임을 제외하곤 세대들이 주도하는 모임을 구상해 진행해 보도록 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최소한 그 일을 주도하는 사람이 생기고, 역할을 배우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나도 교회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는 추억은 남지 않겠는가 말이다.

셋째는 정해진 용도 외에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것이다. 컴퓨터 주위에 선인장을 놓아둔 경험이 있는가? 선인장의 용도를 확대한 샘이다. 찬양대의 역할을 입례송, 폐회송 그리고 한 번의 특송으로 제한해 두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찬양팀 대신 전통예배시간의 회중찬양을 인도하는 사역팀으로 재해석하여 사역에 참여시킬 수 있다. 영상 스크린에 설교자의 커다란 얼굴만 비출 필요가 있나? 아니다. 예배 전후로 예배 묵상의 글과 사진 이미지를 첨부 하고 음악을 넣어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는 교회 안밖에 예술적 재능과 시각을 가진 이들을 격려하고 이들을 축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 있다. 물론 환영해 주지 않아도, 아니 거센 비난 속에서도 자라갈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환경에서 자라야 독이 아닌 약을 만들어내지 않겠는가! 교회에 덕을 끼치고 공동체를 세워가는 은사와 직임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첨부한 영상을 보고,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말해 보라. 성도 중 누군가 와서, 창의적인 모습으로 주님을 섬기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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